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망디 상륙작전 (문단 편집) === 굿우드 작전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attachment/goodwoods.jpg|width=100%]]}}} || 이 시점에서 연합군은 심하면 몇 미터를 전진하기 위해 엄청난 피를 쏟아내는 상황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독일군도 계속 증원돼서 노르망디 교두보를 완전포위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므로 연합군은 슬슬 조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입안된 것이 '굿우드 작전'이었다. 영국군이 독일군의 가장 강한 저항 고리이자 거점도시 캉을 점령하여 독일군의 관심을 끄는 사이에 미군이 생로 남쪽으로 진격해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것이 계획의 일환이었다. 동원된 병력도 무려 3개 완편 기갑사단에 첫날 4,500대의 항공기가 8천 톤에 달하는 폭탄을 쏟아부을 예정이었다. 7월 18일 영국군이 [[https://en.wikipedia.org/wiki/Operation_Goodwood|굿우드 작전]]에 나섰다. 그러나 영국군의 조급증이 병크를 불러왔다. 딱 3km짜리 진격로에 3개 사단을 밀어넣은 탓에 '''교통 정체'''가 발생해 진격로가 꽉 막혀버렸고, 은근히 많은 독일군이 8천톤의 융단폭격에도 살아남아 모든 방어 전력을 가동 정면의 영국군을 물고 늘어지자 진격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이때 노르망디 전역에서 88mm 대공포하면 소개되는 4문의 대공포의 분전이 일어난다. 기록 주체마다 다른데 21기갑사단의 루크 중령은 자신이 권총으로 위협한 끝에 공군이 대전차임무를 수행했다고 기록하였지만 공군측에서는 해당 방공포장이 눈 앞에 밀려오는 영국군 전차들에게 자의적으로 대전차 작전을 실시했다고 되어있다. 이런 상황은 20일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20일 폭우가 쏟아져 진격로가 진창이 되면서 딱 3일 만에 작전이 취소되고 말았다. 그동안 영국군은 300~500대의 전차와 4,000여명의 병력을 잃는 손실을 입었고, 독일군은 100여대의 전차를 손실했고 2,000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다. 굿우드 작전은 현재까지도 논란이 많은데 이는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른 작전이었던 동시에 영국군과 무엇보다 자신의 공을 치켜세우는 몽고메리 특유의 자뻑정신 때문에 몽고메리 까들에게 집중적으로 물어뜯기고 있다. 그래도 영국군의 작전 목표지점까지의 돌파는 완벽히 실패했지만 [[양동작전|독일군이 영국군 지역으로 병력을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미군은 2대 1의 우세를 [[https://en.wikipedia.org/wiki/Operation_Cobra|코브라 작전]]에서 누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굿우드 작전 자체를 완전 실패라고 보기엔 굉장히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